11/11/2010

무신론과 관련된 흔한 논증들

공통적인 논쟁

도입

이 문서는 무신론의 토론을 위해 제공된 뉴스 그룹에 반복적으로 올려진 논점들에 대한 응답을 싣고 있다. 여기에 다루어 진 논점들은 `무신론의 소개' 문서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그 문서를 먼저 읽어 보기를 권한다. 대답들은 철저하거나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FAQ 문서의 목적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이 주어진 대답에서 다루어 지지 않은 것이라면 뉴스 그룹에서 자유롭게 당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내용 개괄
  • 아돌프 히틀러는 무신론자였다!
  • 성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 파스칼의 내기(신에게 거는 것이 안전한 이유)
  • 주님인가 거짓말장이인가 미치광이인가?
  • 오캄의 면도날이란 무엇인가?
  • 예수를 믿는 것이 좋은 이유
  • 내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유
  •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숭배한다
  • 우주는 너무도 복잡해서 누군가의 설계로 된 것이 분명하다
  • 거덜(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 무신론과 애국심에 대한 조오지 부시의 입장
  • 나는 지옥이 어디 있는지 안다!
  • 성경 속의 모순을 찾습니다
  •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다
  • 미국은 비기독교 국가이다
  • 성경은 "죽이지 말라"고 말한다
  • `xian'이 무슨 뜻입니까?
  • 성경은 pi(원주율)이 3이라고 말한다!
  • 무신론자는 악마주의자가 아닙니까?

아돌프 히틀러는 무신론자였다!

"히틀러는 무신론자였다. 그가 한 짓을 보라!"

강조하건대 아돌프 히틀러는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민족주의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은 특별히 각자 자기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단지 피상적으로 신의 뜻을 얘기하는 것을 중단하게 하고 실제로 신의 뜻을 실행하게 하여 신의 말씀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만들 성스러운 의무를 지닌다. 왜냐하면 신의 말씀은 인간에게 그 형체와 정수와 그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그의 작업을 파괴하는 자는 주님의 피조물, 그 성스러운 의지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일깨워, 원한다면 각자 그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이 누그든 그 활동에 있어서 말이나 행동으로 그의 종교 적인 공동체의 한계를 벗어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을 반대하는 것을 일차 적이고 가장 성스러운 의무로 삼게 하라.
[중략]
따라서 오늘 나는 전능하신 신의 의지를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을 유대인으로부터 방어함으로써 나는 주님의 일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랄프 만하임 역-먼소류 한국어 역]
히틀러는 때때로 분명히 유신론자로 보였고, 기독교도임을 주장했다.
총통께서는 최종 해결책의 임무를 맡은 자들에게 살해가 가능한 한 인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렸다 이것은 해충으로 가득한 세상을 정화하라는 신의 명령에 봉사하고 있다는 그의 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의 계급을 혐오하면서도 여전히 로마 교회의 평판 좋은 회원인 그는 유대인이 신을 살해한 자들이라는 그들의 가르침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말살 정책은 따라서 비개인적으로 잔인하지 않게 행해지는 한은 그가 단지 신의 복수의 손으로서 행동하는 것이었으므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John Toland (Pulitzer Prize winner), from "Adolf Hitler", pp 507, talking about the Autumn of 1941.]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나는 지금도 카톨릭이라네..."라는 히틀러의 인용문은 1941년 10월 에스에스의 부관 게어하트 엥겔의 일기에 기록되어 있었다. 히틀러는 많은 청중 앞에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선전적인 거짓말이라고 매도할 수 없다.
물론 어떤 나쁜 사람이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해서 그 믿음이 나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히틀러가 신을 믿는다고 주장한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무신론자였다고 우리가 확실히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성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성경에서 이르기를..."

대부분의 무신론자는 성경이란 수 천년 전에 구전에 의해 여러 해 전부터 전해져 온 것을 기록한 많은 저자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그 정확성이 미심쩍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속에 있는 어떠한 진리라고 주장된 것이라도 그 정통성이 의심스럽다. 이것은 성경 속에 전혀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어떠한 진실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조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또한 어떤 문구라도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문구가 한가지, 그리고 그 한가지만을 의미한다고 하는 어떤 주장도 올바르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느낌은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확장 적용된다는 것을 주지하라.
무신론자에게는 유신론자가 다른 훌륭한 종교적 책들은 무시하고 자기 자신의 종교의 책들만을 선호하는 것이 유별나 보인다.


파스칼의 내기(신에게 거는 것이 안전한 이유)

"신을 믿었는데 그것이 틀렸다고 판명된 경우에는 아무것도 잃지 않지만 신을 믿지 않았는데 그것이 틀렸다고 판명되면 지옥에 가게 된다. 따라서 무신론자가 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주장은 파스칼의 내기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몇 가지 오류를 안고 있다.
첫째로 이것은 어느 종교를 따라야 할 지 지시하지 않고 있다. 사실 상호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많은 종교들이 있다. 이것은 때때로 `틀린 지옥을 피하기' 문제로 묘사된다. 어떤 사람이 한 종교의 추종자라면 결국 다른 종교의 지옥에 빠질 수 도 있다.
비록 신이 있다고 가정해도 그것은 단 하나의 특별한 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가? 그들 모두를 믿으면 어느 계명을 따를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둘째로, "신을 믿고 나중에 그것이 틀렸다고 판명되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잘못된 신을 믿었다고 가정하자-진짜 신이 당신의 어리석음을 벌할 수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약을 거부하고 기도를 선택함으로써 야기된 죽음들을 고려해 보라.
이 주장의 또 하나의 오류는 두 가지 경우의 가능성이 동일하거나 최소한 비교적 비슷하다고 하는 가정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만일 사실은 신이 있을 가능성이 0에 가깝다면 이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그래서 슬프게도 이 주장은 이미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을 갖을 것 같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지적으로 정직한 사람에게는 믿음이 약간의 직관과 함께 증거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은 의지 혹은 비용-이익의 분석의 문제가 아니다.
형식적으로 말해서 이 주장은 네 개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1. 신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2. 신이 있으면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영원한 영혼을 위해 나쁘다
  3. 신이 없으면 신을 믿는 것은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4. 따라서 신을 믿는 것이 이익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첫째는 진술 1을 가정으로 보고, 진술 2를 결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진술 1로부터 간단한 논리적 추론에 의 해서 진술 2에 도달하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 진술들은 서로 상대로부터 유도되지 않는다.
다른 접근법은 진술 1과 2를 모두 가정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가정 2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입장을 진술하는 가정이며 기독교도만이 그 가정에 동의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 주장은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당신에게는 신을 믿는 것이 이익이 된다"라고 압축된다---상당히 공허한 항진명제이며 파스칼이 애초에 의도했던 의미의 주장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신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면 왜 비슷한 다른 가정 대신에 진술 2를 취해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신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믿기로 한 사람들에 대해 화를 낼 수도 있지 않은가?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틀림없이 누가 진짜로 믿고 누가 내기로서 믿는지 알 것이다. 그가 사람들이 그를 순수하게 믿기를 원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후자를 쫓아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 파스칼의 내기에 의해 믿음을 선택한 사람이 이후에 순수하게 믿는 쪽으로 전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불행히도 많은 무신론자들은 그런 도약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덧붙여서, 이 가상적인 신이 단순한 믿음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신이 그 추종자들로부터 신뢰와 복종의 요소를 요구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신을 믿으면 아무 것도 잃는 것이 없다는 주장을 파괴한다.
마지막으로 이 신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신이라면 분명 그는 사람들을 그를 어쩌다 믿게 되었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의 그들의 행동에 의해 심판할 것이다. 선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신은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이 숭배하고 싶어할 만한 신이 아니다.


주님인가 거짓말장이인가 미치광이인가?

"예수가 존재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 존재했다면 그는 자신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다음 중 하나를 의미한다.

  • 그는 주님이었다,
  • 그는 거짓말장이였다, 또는
  • 그는 미치광이였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교훈들로 봐서 그가 거짓말장이였을 리는 없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미치광이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주님이라고 결론지어야 한다"

첫째, 이 주장은 예수가 실재했었다는 가정에 매달려 있다. 이것은 최소한 논쟁의 여지가 있다.
둘째, 이 주장은 우리가 `이분화' (`논리적 주장의 구성' 문서를 참조)에 빗대서 `삼분화'라고 부를 수 있는 논리적 오류를 시도하고 있다. 즉, 이 주장은 우리를 세개의 가능성에--사실은 더 많은 가능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국한시키려 하고 있다.
두개의 다른 가능성은:
  1. 그는 성경에서 잘못 인용되었다. 그는 스스로 주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2.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초기 기도교인들에 의해 조작되었거나 허구적인 이야기로 장식되었다.
라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비록 요10:30 에서 그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가 신이었다는 주장은 그가 죽은 뒤 그의 열 두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처음 제기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미치광이'였다는 가능성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라. 오늘날조차도 수백 혹은 수천의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주님 또는 그의 유일한 선지지라고 확신시키는 데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L. 론 허바드, 문선명, 짐 존스, 데이빗 코레쉬 등은 계속 그들의 신성을 팔러 다니고 있다. 더 미신적인 나라에서는 문자 그대로 수 백명의 현대의 메시아들이 있다.
참고로, `주님, 거짓말장이, 혹은 미치광이'주장은 유명한 작가이자 인정된 기독교도인 C. S. 루이스가 고안한 것이다. 그는 유사한 변증론을 싣고 있는 많은 책들과 기독교적 주제에서 영향을 받은 여러 권의 환상 및 SF 소설을 썼다.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나니어 소설 시리즈는 예수 대신 아슬란(사자)을 내세워 기독교 신앙의 여러 측면을 다시 이야기하는 환상 소설이다. 재미있게도 미국의 몇몇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루이스의 책이 `악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금지시키려 시도했다.


오캄의 면도날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오캄의 면도날 얘기를 하곤 하는데 그게 뭡니까?"

윌리엄 오캄(오캄 출신 윌리암이란 뜻)은 오캄의 면도날이라 불리우게 된 원칙을 구성했는데, 그것의 원래 형태는 "쓸데없이 구성요소를 늘리지 말라"라고 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요소의 존재 없이 무언가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오캄의 면도날을 말할 때에는 그것을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한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해답을 취하라"와 같이.
무신론과의 관련성은 우리가 우리 주변을 볼 때 두 가지 가능한 설명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믿을 수 없이 섬세하고 복잡한 우주가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
  • 믿을 수 없이 섬세하고 복잡한 우주가 있다. 그리고 그 우주를 창조한 신이 있다. 분명히 이 신은 영(0)이 아닌 복잡함을 지니고 있다.
두 가지 설명이 모두 사실과 부합한다면 오캄의 면도날은 우리에게 둘 중에서 더 간단한 것---해답 1번---을 취하라고 제안할 것이다. 불행히도 어떤 사람은 더 간단한 세 번째 해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 믿을 수 없이 섬세하고 복잡한 우주가 있다. 우리는 단지 그렇게 상상한다. 이 세번째 선택사양은 우리를 논리적으로 유아론으로 이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부적절한 것으로 여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좋은 이유

"나는 나의 종교의 덕과 좋은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전도는 사양합니다.
당신의 종교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십시오. 그러나 개종이라는 주제로 포스팅을 올리지 마십시오. 그런 포스팅은 무신론 뉴스 그룹에 적합하지 않으며, alt.atheism.moderated 또는 soc.atheism에서 거부될 것입니다. 뉴스 그룹 talk.religion.misc에서 시도해 보십시오.
당신은 틀림없이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뉴스 그룹에 무신론자가 전향하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당신도 다른 사람에게 해 주십시오.
때때로 유신론자들은 신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인 주장을 긴 비유나 우화의 형태로 만듭니다. 무신론자들은 이미 신에 대해 들어 보았고 그에 대한 기본적 주장들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우화의 목적이 무신론자에게 신이 존재하며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말하기 위한 것 뿐이라면 그런 글은 여기에 올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들어 보지 못한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유

"나는 개인적인 경험과 기도로부터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유신론자가 그들이 숭배하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개인적 증거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는 그런 존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증거는 개인마다 다릅니다.
더구나 당신의 개인적인 증거를 버리기 원해서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유에프오에 납치됐었다거나 엘비스의 유령과 만났다는 등등의 모든 종류의 그럴 듯하지 않은 일들을 주장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었습니다. 당신은 그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합니까?"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언젠가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인용문은 아인슈타인이 기독교의 신을 믿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용은 문맥을 벗어난 것으로서 원래는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해석의 일면을 부정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더구나 아인슈타인의 종교적 배경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였습니다.
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보여 주기 위한 더 좋은 인용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인간의 운명과 행동에 간섭하는 신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질서 있는 조화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이론을, 사용 가능한 데이타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과학적 모형으로서 인식했다. 그는 그 이론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았고, 확률이나 무작위성이 자연의 근본적 성질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통계적인 해석이나 무작위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더 낫고 더 완벽한 이론이 발견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은 그러한 더 나은 이론이 발견되지 않았고 더 많은 증거들은 그런 이론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아인슈타인의 더 긴 인용문은 "과학, 철학, 그리고 종교"(과학, 철학, 종교의 민주적 생활 방식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 출판사, 뉴욕, 1941)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모든 사건의 질서 있는 규칙성에 젖어 들수록, 이러한 질서 있는 규칙성 옆에 다른 자연을 위한 원인이 들어 설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은 더욱 굳어집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규범이나 성스러운 규범은 자연 현상의 독립적인 원인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해서 자연 현상에 간섭하는 인격적인 신의 교리는 과학에 의해 더 이상 실제적인 의미에서 결코 언급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언제나 과학적 지식이 아직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었던 영역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종교의 대표자들 입장에서 그러한 행동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치명적이라고 확신합니다. 밝은 빛 속에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교리는 필연적으로 인류에 대항 영향력을 잃게 되어 인간의 진보에 계산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들의 윤리적인 선의 추구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인격적인 신의 교리, 즉 과거에 사제의 손에 막대한 권력을 쥐어 주었던 공포와 희망의 근원을 포기하는 입장을 취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 속에서 그들은 인간성 자체로부터 선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배양할 수 있는 힘을 이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더 어렵지만 비교할 수 없이 더 가치 있는 작업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읽은 그것은 저의 종교적 확신에 대한 거짓말, 즉 조직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거짓말입니다. 저는 인격적인 신을 믿지 않으며 그것을 부정한 적이 없고 오히려 분명히 밝혔습니다. 제 안에 어떤 종교적인 젓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우리의 과학이 밝혀낼 수 있는 한의 우주의 구조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일 것입니다.
위 글은 아인슈타인이 영어로 쓴 1954년 3월 24일 날짜의 편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헬렌 듀카스(역주: 아인슈타인의 개인 비서)와 바네쉬 호프만이 편집하고 프린스턴 대학 출판사가 간행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인간적인 면"에 포함되어 있으며 같은 책에서:
나는 인간의 부도덕성을 믿지 않으며, 윤리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아무런 초인적인 권위 없이 인간의 독점적인 관심사라고 여깁니다.
아인슈타인의 종교에 대한 더 많은 언급은 웹의 <URL:http://www.stcloud.msus.edu/~lesikar/ESR.html>에 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기독교를 믿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틀렸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숭배한다

"모든 사람은 돈이든 신의 힘이든 무언가를 숭배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사람은 다신교도입니다. 유신론자는 무신론자만큼이나 여러 가지를 염려합니다. 예를 들어 무신론자의 가족에 대한 반응이 숭배라면 유신론자의 그것도 숭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가지를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숭배'라는 말의 어떤 의미 있는 정의를 두고 봐서도 숭배가 될 수 없습니다.


우주는 너무도 복잡해서 누군가의 설계로 된 것이 분명하다

"우주가 설계되었다는 것은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당신은 분명히 여기에 나타나는 것들이 우연히 생겼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이것은 설계론(Argument From Design)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주에 설계적인 요소가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지구상의 생명체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창조자의 증거라고 믿는 분들은 뉴스 그룹 alt.origins 를 잠깐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또는 다음 아키브를 참조하십시오: <URL:http://www.talkorigins.org/>
그 논쟁의 양 측면을 다 요약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소위 과학적 창조론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과학적 증거도 없으며, 더구나 우주의 복잡성과 지구 위의 생명을 설명하는 많은 증거와 관찰과 이론들이 있습니다.
설계론의 기원은, 인체와 같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어떤 것의 존재는 그것이 우연히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불가능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외적인 지능이 있어서 인간과 같은 것이 혼돈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이 그렇게 있을 법하지 않다면,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있을 정도로 완벽한 우주 전체를 고안할 능력이 있는 정신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있을 법하지 않음이 틀림 없을 것이다. 창조자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논법은 그대로 창조론자에게 되돌려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만일 창조자가 우주를 창조했다면 누가 그 창조자를 창조했는가?"라는 친숙한 주제로 이끌지만 선회하는 또 다른 불가능성만 더해 줄 뿐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창조자는 창조되지 않았고 다만 존재할(또는 했을) 뿐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창조자를 도입하지 않고 우주가 단지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이 무언가라고 물어볼 수 있다. 사실 스티븐 호킹은 그의 책 `시간의 역사'에서 우주는 닫혀 있고 유한하며 시작이나 끝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설계론은 종종 소위 `시계공론'이라는 비유로 서술된다. 어떤 사람이 해변에서 시계를 발견했다고 상상하자. 그 사람은 그것이 시계공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가정할까, 아니면 자연적으로 진화했다고 가정할까? 물론 그는 시계공을 가정할 것이다. 그런데 우주는 시계처럼 정교하고 복잡하므로 우주 역시 창조된 것이다라고 하는 주장이다.
시계공 비유는 설계론을 훨씬 뛰어 넘어서 세 개의 특정한 오류를 담고 있다. 첫째, 시계공은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가지고 시계를 창조하지만 신은 무로부터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된다. 이 두 종류의 창조는 분명히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그 비유는 매우 약하다.
둘째, 시계공은 시계를 만들지만 세상에는 다른 많은 물건들이 있다. 우리가 해변을 더 걸어가다가 원자로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시계공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비유는 창조의 각각 다른 부분(또는 하나 이상의 우주가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 들인다면 다른 우주)에 대하여 각각 책임이 있는 다수의 창조자를 암시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계공론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시계가 자연의 무작위성과 달리 질서가 잡혀 있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뒷부분에서는 우주가 분명히 무작위적이지 않으며, 질서의 요소를 보인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시계공론은 자체적으로 일관되지 않다.
시계공론의 논리적인 비일관성을 떠나서 생물학적인 체계와 기계적인 체계는 매우 다르게 행동한다. 톱니바퀴 덩어리에게 그럴 법하지 않은 것이 반드시 생물학적인 단위의 혼합물에도 그럴 법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


거덜(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거덜의 불완전성 이론에 의하면 성경이 참이면서 동시에 완전할 수는 없다."

거덜의 불완전성 정리는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일관된 형식 체계에 적용된다.
  • 보통의 산술을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 주어진 문자열이 형식 체계 내의 공리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추론 과정을 가지고 있다(즉 재귀적이다)
거덜은 임의의 그러한 체계S에서 "이 문장은 S에서 증명 불가능하다"라는 표현을 구성할 수 있음을 보였다.
만일 그런 표현이 S에서 증명 가능하다면 S는 비일관적이다. 따라서 임의의 그런 체계는 불완전하거나 혹은 비일관적이다. 형식적인 체계가 불완전하다면 그 체계 안에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증명할 수 없는 표현이 그 체계 안에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거덜의 제1 불완전성 정리는 빙 돌아서, 형식 체계로 하여금 `거짓말장이의 역설'의 변형을 재구성하도록 한다. 고전적인 거짓말장이의 역설은 평범한 말로 해서,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이다.
전제가 결정 불가능이면 형식 체계도 그것을 결정 가능이라고 유도해 낼 수 없다. (이것은 거덜의 제2불완전성 정리인데, 증명하는데 기교가 필요하다.)
신학적인 토론에서 사용되는 논리는 잘 정의된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거덜의 불완전성 정리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서는 가치가 없다.
단순히 신의 존재를 공리로 삼음으로써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형식 체계를 구성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이것이 무신론자들에게 확실한 증명으로 보일 리는 없다.)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모두 동의하는 공리 위에 형식 체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체계에 대하여 거덜의 불완전성 정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체계 안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은 일반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가상적인 형식체계는 실제적인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 줄 수 없다; 형식체계는 단지 추상일 뿐이다.
또 하나의 빈번한 주장은 거덜의 불완전성 정리가 종교적 문헌이(성경, 몰몬경, 또는 어느 것이든) 일관적일 수도, 우주적으로 적용될 수도 없음을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종교적 문헌은 형식 체계자 아니므로 그런 주장들은 무의미하다.


무신론과 애국심에 대한 죠지 부시의 입장

"죠지 부시가 정말로 무신론자는 시민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했는가?"

다음 대화가 1988년 8월 27일 시카고 공항에서 미국 무신론 출판자의 로버트 I. 셔먼과 죠지 부시 사이에 있었다. 셔먼은 신임받는 기자이고 기자 연합의 일원으로서 초빙되어 참석하고 있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자는 일리노이주를 위한 연방 재난 구호 선언을 위해 그 곳에 갔었다. 토론의 주제는 대통령 예비 선거로 돌려졌다:
셔먼:
무신론자인 미국인의 표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실 겁니까?
부시:
저는 무신론자 사회에서는 득표력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저에겐 중요합니다.
셔먼:
무신론자인 미국인의 동등한 시민권과 애국심을 인정하십니까?
부시:
아니요, 저는 무신론자가 시민이나 애국자라고 간주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곳은 `신 아래서 한 나라'입니다.
셔먼:
정교 분리를 건전한 헌법적 원리로서 지지하십니까?
부시:
네, 저는 정교 분리를 지지합니다. 저는 단지 무신론자를 좋아하지 않을 뿐입니다.
UPI는 1989년 5월 8일 많은 무신론 단체가 아직도 그 말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보도했다.
그 대화는 1989년 2월 27일 월요일자 `볼더 데일리 카메라'에도 나와 있고, `프리 인콰이리'지 1988년 가을판 8권 4번 16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1988년 10월 29일 셔먼 씨는 부시-퀘일 일리노이주 선거 운동 부의장 에드 머넌과 마주했다. 이것은 셔먼 씨가 일리노이 주 시카고 지역 21에 잇는 공동체 연합 학교에 대하여 자신의 1학년 아들에게 합중국 국기에 대하여 `신 아래 한 국가'(부시의 표현) 로서 충성의 맹세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제기한 소송에 대한 것이었다. 다음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셔먼:
어제 미국 무신론 연합은 충성의 맹세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부시 선거운동 본부는 이 소송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이 있읍니까?
머넌:
그건 ~@요.
셔먼:
~@가 무엇입니까?
머넌:
미국 무신론 협회가 하는 짓은 다 ~@요.
셔먼:
이 문제에 대한 부시 선거 운동 본부의 공식 입장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넌:
천만에요.
[참고: ~@ = bullshit]
부시의 당선 이후 미국 무신론자 협회는 부시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말에 대한 철회를 요구했다. 1989년 2월 21일 대통령 고문 C. 보이넌 크레이는 백악관 문서에서 부시는 종전의 입장을 고수한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썼다:
"당신이 알고 있듯이 대통령은 종교적인 인물로서 무신론을 지지하지도 않고 무신론이 불필요하게 정부로부터 권장되거나 지원을 받아야 된다고 믿지도 않으십니다."
정보를 더 원하신다면 카메론가에 주소를 두고 있는 미국 무신론자 참전용사들 협회와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옥이 어디 있는지 안다!

"나는 지옥이 어디 있는지 압니다! 지옥은 노르웨이에 있어요!"

노르웨이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는 `Hell'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들이 있습니다. 이 정보를 처음 듣는 사람은 약간 재미있어 할지도 모르지만 유즈넷의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매주 듣는 것에 이제 식상해 하고 있습니다.


성경 속의 모순을 찾습니다

"성경 속의 모순에 대한 목록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미국 무신론 출판사는 성경적인 모순에 대한 자세한 소책자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동반된 문서 `무신론 매체'에 실려 있는 그런 서적 목록을 보십시오.
또한 ftp.mantis.co.uk에 성경적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화일이 있습니다. 짐 메릿의 목록이 html형식으로 입수 가능합니다.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에는 그들의 웹 페이지에 성경적 모순의 목록이 있습니다. 주소는: <URL:http://www.infidels.org/org/ffrf/lfif/contra.html>. 입니다.
물론 뉴스 그룹 soc.religion.christian에도 성경의 모순점이라고 주장된 것의 대부분을 반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선정된 화일이 있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다

"나라를 세운 조상들의 종교적 믿음에 따라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간주해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 국조들의 저서에 근거하여 보면 그들이 합중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인용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반 문서들에 추가로 제시되어 있고, ftp.mantis.co.uk의 아키브에도 더 많이 있습니다:
"사실상 교회적인 기반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때로 그것은 시민적인 권위의 폐허 위에 영적 전제정권을 세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정치적인 전제정권의 왕좌를 떠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민중의 자유의 수호자가 된 적이 없습니다. 공공의 자유를 파괴하려 하는 통치자는 조직된 성직 제도가 유용한 도구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을 수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세워진 공정한 정부는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제임스 매디슨, `추모와 반박', 1785년]
"나는 인류가 보존해 온 가장 치명적인 슬픔의 유린 사례--즉 십자가를 암시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거의 몸이 떨립니다. 그 슬픔의 장치가 어떤 재난을 만들어 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존 애덤즈, 토마스 제퍼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역사에서는 사제를 등에 태운 민중이 자유로운 시민 정부를 유지한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것은 가장 저급의 무지로서, 그들의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언제나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이 훔볼트 남작에게, 1813년]
"나는 그, 곧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서 어떠한 숭배나 찬양을 원하지 않으며, 그는 오히려 그런 것보다도 무한히 위에 계시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종교적 신앙과 행동에 관한 글", 1728년 11월 20일]

미국은 비기독교 국가이다

"죠지 워싱턴이 합중국은 어떤 의미로도 기독교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 사실입니까?"


아니오. 문제의 인용문은 트리폴리 조약 제 11조(8 Stat 154, Treaty Series 358)에서 나온 것이다.
제 11조

미 합중국 정부가 어떤 의미에서도 기독교 위에 설립된 것이 아니므로, -- 그 안에 법, 종교, 또는 뮤셀멘의 고요 등에 반대하는 성격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 그리고 상기 합중국이 어떠한 마호메트교 국가에 대한 전쟁이나 적대적 행위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으므로, 종교적인 이유로 제기된 어떠한 구실도 두 나라 사이의 조화에 대한 간섭을 유발할 수 없음이 양 측에 의하여 선언되었다.
본문은 국회 기록 보관소 또는 찰스 I. 비번즈의 "미합중국의 조약 및 타국과의 국제 조약 1776-1949", 제11권,(pp. 1070-1080)과 같은 조약집에서 볼 수 있다.
트리폴리 조약은 1796년 11월 4일 트리폴리에서 조인되었다. 조약의 영문판은 1797년 6월 7일 미국 상원에 의해 비준되었고 1797년 6월 10일 존 애덤스 대통령의 인준을 받았다. 최근에 조약의 아랍어판의 미국측 복사본에는 그 인용문 뿐 아니라 제11조 전문이 빠져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 대신 알지에의 데이로부터 트리폴리의 파샤에게 보내는 서한이 포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랍어를 영문으로 번역한 사람은 토마스 페인의 가까운 친구이자 기독교 반대자인 알지에 총영사 조엘 발로우였다. 발로우가 제11조를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랍어판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랬을 리는 없을 것 같다.
1806년 그 인용문을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트리폴리 조약이 비준되었다. 1815년 트리폴리 조약에는 비슷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만 합중국 정부가 종교적 기반 위에 설립되지 않았다는 내용은 없으며, 단지 어느 종교와도 양립 불가능하지 않다고만 되어 있다.
1776년 트리폴리 조약의 아랍어판의 단어의 용법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영어판 제 11조는 미국 상원과 대통령의 비준을 받은 만큼 그 시대의 의견을 적절히 대표하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성경은 "죽이지 말라(Thou shalt not kill; KJV. Ex20:13)"고 말한다

"성경에서는 "죽이지 말라"고 하는데 많은 기독교도들은 군대에서 봉사하고 있다, 얼마나 위선적인가!"


그 계명은 더 적절히 번역하면 "살인하지 말라(Thou shalt not murder)"이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성경 번역은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Xian'이 무슨 뜻입니까?

"`Xian'이라는 약어가 무슨 뜻입니까? 욕인가요?"


`크리스트'라는 이름을 쓸 때 그것을 그리이스어 XPICTOC khristos의 첫 글자(카이)인 `X' 또는 `x' 로 줄여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를 들어 `xmas'는 "크리스마스"의 흔한 약어입니다. `Xian'은 `Christian'을 뜻하는 것 뿐입니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Christian'의 약어로서 `xian', 또는 `xtian'을 쓰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163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XPICTOC의 첫 두 글자를 취하여 `Christian'을 `xpian'이라고 쓰는 것이 더 흔했습니다. 사제들은 영세(`Christenings')를 `xpen' 또는 `xpn'이라고 속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욕이 아닙니다.


성경은 pi(원주율)이 3이라고 말한다!

열왕기상7:23에서 성경은 말하기를: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고(高)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만 하며
원주 30큐핏의 주물 바다를 만들면 지름은 30/pi = 9.55큐핏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반올림하면 10 큐핏이 된다.
짧게 말해서 성경은, 소숫점 이하 두 자리까지 정확하게 주어져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원주율 파이가 3이 틀림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단어의 용법상 그런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무신론자는 악마주의자가 아닙니까?

무신론자는 어떠한 초자연적인 신성한 존재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탄이 모든 점에서 신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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