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관련 종사자가 많이 들어오는 커뮤니티인 클리앙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을 모색하는 SI 종사자분의 문의글을 보았습니다. 대충 내용은 미국에 가고 싶은데 미국 회사는 어렵다고 하고 한인회사를 가도 괜찮을 것 같아 알아보니 인턴쉽이던다 에이전트에게 돈을 많이 줘야 하더라..뭐 그런 내용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시려면 우선 미국 체류 자격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합니다. 아주 정확한건 아니지만 개략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비자 -> 단기 체류 비자 -> 장기 체류 비자 -> 영구 체류 비자(영주권) -> 시민권
무비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3개월 무비자 체류입니다. 사전에 허가만 받고 따로 비자 스탬핑(미국 대사관 가서 여권에 비자 도장 찍는 것)을 받지 않은채 바로 미국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입국하게 되면 미국에 들어와서 다른 비자로 체류 신분 변경이 안됩니다. 또한 기간 연장도 안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영주권을 받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일단 무비자로 입국한 후 미국에서 나가지 않고 어떻게 방법을 찾아서 영주권을 받겠다고 하시면 99% 불가능이라고 알고 계시는게 좋습니다.
단기 체류 비자는 기존에 사용하던 관광비자입니다. 기본 6개월 체류기간을 주고 사유에 따라 6개월 연장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전에 비자 스탬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관광비자로 입국시 미국 내에서 I-20(입학 허가서)를 받아서 유학생 신분으로 변경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외국에 나갔다가 다시 미국 입국시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문제가 없도록 하려면 이 I-20를 가지고 한국에 가셔서 F1(유학)비자 스탬핑을 받아서 다시 입국해야 합니다.
장기 체류 비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각 비자의 세부 분류는 생략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에게 문의하세요.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F1 비자 : 유학비자입니다. I-20를 발급한 학교에 재학하는 한 미국내 체류가 가능합니다. 배우자 취업 불가입니다. 본인도 취업 불가이지만 OPT라는 취업허가를 받으면 한시적으로 취업이 가능합니다.
J 비자 : 문화교류비자입니다. 흔히 인턴십이라고 광고하는 비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배우자 취업이 제한적으로 가능하며, 본인도 J비자 발급 대상 회사에만 취업 가능입니다. (옮겨다니기도 어려움)
E2 비자 : 투자 비자입니다. 투자 이민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동안 비즈니스를 위해 체류만 할 수 있습니다. 투자 이민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건 영주권이 아니라 한시적 체류비자입니다. 물론 계속해서 연장 가능합니다. 배우자 취업 가능하지만 본인은 다른 곳에 취업하지 못합니다.
H1 비자 : 취업 비자입니다. SI 로 미국에 취업하실 경우 가장 흔하게(?) 받는 비자 중 하나입니다. 배우자 취업 불가이며 본인만 취업 가능합니다. 회사에서 해고되면 1개월 내에 미국을 떠나야 합니다. 4월부터 신청을 받아 허가가 나오면 10월부터 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4월에 신청받기 시작해서 빠르면 며칠 내, 늦어도 6-7월이면 마감됐기 때문에 비자 받기가 어려웠지만, 경기 불황 이후로는 취업 비자 쿼터(수량)가 남아돌아서 늦어도 됩니다. 2순위(미국내 석사학위 이상,혹은 증명할 수 있는 경력 10년 이상)와 3순위(비경력 혹은 학사 이상)가 있고 각각의 쿼터가 따로 관리됩니다.
L 비자 : 주재원 비자입니다. 한국내 기업의 지사가 미국에 있을 때 여기에 파견나오면서 받을 수 있는 비자입니다. H1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입니다
그 밖에도 E1, H2 등 다양한 비자들이 있는데 SI 종사자가 알아야 할 비자는 위와 같습니다.
영주권 : 영구 체류 비자입니다. 다시 말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10년마다 갱신만 해주면 미국에 영구 체류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외에 6개월 이상 나가있을 경우 사전에 이를 신고해야 합니다. (파견근무 등 타당한 증거 제시 필요) 영주권자는 5년간 미국에 체류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영주권을 받을 경우 가족이 함께 받을 수 있고, 이렇게 영주권을 받은 사람은 취업에 제한이 없습니다. (방산 업체나 정보 기관 등 일부 시민권자만 지원할 수 있는 직장이 있기도 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자입니다. 미국 시민권이 아닙니다. 따라서 영주권자에게 미쿡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영주권을 받는 방법에는 취업 영주권, 투자 영주권, 가족 초청 영주권, 기타 특별 영주권(미국에 도움이 되는 사람 등) 등이 있고, SI 종사자가 받을 수 있는 일반적인 영주권은 취업 영주권입니다.
시민권 : 미국 시민입니다. 한국 여권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이 아니므로 당연히 한국 내 취업이 제한됩니다. 영주권자가 시민권 시험을 거쳐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기초 지식 같은 겁니다. 이제 처음에 언급한 SI 종사자분이 미국에 와서 영주권과 시민권까지 받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클리앙에서 문의하신 분이 언급하신 “인턴십”은 J 비자입니다. J비자는 18개월 단수 비자입니다. 보통 이 비자로 한국에서 사람을 데려올 경우 월급을 거의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연수생” 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를 “연수생” 자격으로 데려오는 걸 생각해 보세요. 작업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아실 겁니다. 그래도 미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지만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에 비하면 거의 착취 수준입니다. 제가 알기론 월급여가 2000~2500불 정도입니다. 그런데 혼자 거주하는 방을 LA나 뉴욕등 대도시에서 빌릴 경우에도 800불은 줘야 하고 2베드룸의 경우 학군이 안 좋은 곳으로 하더라도 (우범 지역이 아니라면) 1400불은 줘야 합니다. 자녀가 1명 또는 동성으로 2명이라면 2베드룸이 가능하지만 성별이 다른 두 명이라면 법적으로 3베드룸이 필요하고 이는 보통 1600불 이상, 학군이 좋은 곳은 2300불 정도는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월급 받아서 방값으로 내면 끝입니다. 따라서, 본인 혼자 오시거나 부부 둘이서만 오실게 아니라면 일단 J비자는 고려하지 않으시는게 현명합니다. 통장에 1억쯤 넣어두셨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먹고 살지도 못합니다.
만약 J비자로 왔다고 해도 장기 체류를 위해서는 일단 H 비자로 변경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원래 J비자를 H비자로 변경하려면 도로 한국에 나가서 2년을 있다가 들어와야 합니다. 이걸 그냥 H 비자로 변경하려면 서류 작업을 해야 하고(재입국 제한 면제 신청), 이를 에이전트에 의뢰하면 몇천불을 요구합니다. 그러니 회사에서 마음에 든다고 H 비자 스폰서를 해준다고 해도 돈은 다시 들게 됩니다. 또한, H 비자 프로세싱을 위한 변호사비도 들어갑니다. 원래 이 변호사비는 회사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한인회사의 경우 이를 부담하는 경우는 1%도 없습니다.
여기서 스폰서란, “우리 회사는 이 사람이 필요하니 이 사람이 H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후견인이 되어준다”는 개념입니다. H 비자 같은 취업 비자도, 나중에 설명할 취업 영주권도 이런 스폰서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보증인 비슷한 개념입니다.
운도 따르고 묵혀둔 돈도 있어 H 비자를 받았다고 하면 1번 연장이 가능하고, 연장까지 고려해서 최대 체류 기간은 6년입니다. 이 6년 안에 미국 영주권을 받지 못하면 6년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간 안에 영주권을 받아야 합니다. 엄밀히 말해 영주권을 받아야 하는게 아니라 영주권 서류가 “접수”되기만 해도 일단 6년 이후로도 체류는 가능합니다. 왜 “접수”라고 하느냐 하면, 어떤 종류의 영주권 신청은 서류를 내고 이게 접수되기까지 6~10년이 걸리고, 접수증을 받은 후에 다시 5~10년이 걸려야 영주권 허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 영주권자 형제 초청 20세 이상 기혼자 영주권 신청)
H 비자를 받았다면 다음은 영주권을 받을 차례입니다. 그런데 H 비자 스폰서를 하는 회사는 많아도 영주권 스폰서를 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같은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한인회사 중에 영주권 스폰서를 약속대로 해주는 회사는 드뭅니다. 심지어 H비자 6년이 끝나도록 해주겠다 말만 하고 나중에 가서 입씻는 사례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주권 스폰서를 하기 위해서는 회사 입장에서도 많은 돈을 은행 계좌에 넣어둬야 하고 여러 가지 비용이 소요되고 번거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영주권 변호사비는 H 비자 변호사비보다 훨씬 높고, 대부분의 한인회사는 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는 회사에서 부담해야 하지만, 그걸 말하면 “내가 그걸 왜 부담하냐? 아쉬운건 넌데?” 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합니다.)
운도 따르고 회사에서 잘 협조하고 그래서 영주권 신청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3순위 비전문직이라면 이 과정에서 또다시 몇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2순위 전문직이라면 몇개월 안에 영주권이 나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주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그 회사에서 계속 근무해야 나중에 시민권 신청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전에 이직을 하거나 그만두게 될 경우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시민권 신청시 시민권은 커녕 영주권이 취소되기도 합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영주권까지 받는데에는 짧으면 2-3년, 보통은 7-8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립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이 33살 쯤에 미국에 와서 영주권 받아면 43살이라면 이미 아이들이 중학생은 되어 있을테고 비용도 많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소득은 낮으니 결국 배우자나 본인이 새벽까지 투잡을 뛰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케이스(어쨌건 영주권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를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Case 1: Best Case
주재원 파견(L) -> 취업 영주권 2순위 전문직 -> 영주권자 (빠르면 2-3년 안에 영주권 취득)
Case 2: Worst Case
인턴쉽(J, 문화교류비자) -> 취업 비자(H1) -> 취업 영주권 3순위 비전문직 -> 영주권자 (1.5 + 6 + 6 = 12~14년 소요)
Case 3: Average Case 1 (미국내 석사 혹은 전문직 경력자)
취업비자(H1) -> 취업 영주권 2순위 전문직 -> 영주권자 (6+1 = 7년 소요. 회사가 협조해 주면 3-4년 소요)
Case 4: Average Case 2
취업비자(H1) -> 취업 영주권 3순위 -> 영주권자 (3~6(H1)+3~6(영주권신청)= 6~12년 소요)
물론 위의 각 단계에서 조금만 삐끗하거나 회사가 입을 씻어버리면 하루 아침에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그러니 사실 불체자가 되는 경우가 Worst Case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본 중에는 미국 내 박사학위까지 있는데도 H1 -> 영주권의 과정에서 삐끗해서 불체자가 되신 분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영주권자가 되더라도 한인회사에서 근무할 경우에는 미국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와 나쁜 혜택(Benefit)을 받게 됩니다. 한인회사는 미국에서도 한국에서 하던 것 그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베니핏이란, 의료보험이나 연금 등인데, 미국에는 기초 연금 이외에는 한국과 같은 국민 연금이나 건강 보험이 없기 때문에 기업이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됩니다. 저도 한인 회사에서 근무했던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의료보험도 없이 그냥 아프면 타이레놀 먹어가며 참았습니다. 국가 기초 연금 외에 연금 따위는 당연히 없었죠. 제가 그만둔 뒤에 의료보험을 도입했다고는 하더군요.
따라서 영주권 취득후 1년여가 경과된 이후에는 미국 회사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가면 누구나 다 영어 잘할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한인회사에서 일하면 영어를 쓸 일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영어도 늘지 않은채 근근히 살게 됩니다.
나이 40이 넘은 사람, 그것도 한인회사에서 일하느라 영어도 안되는 사람을 채용할 미국 회사가 얼마나 될까요? 한국이라면 관리자급으로 채용이 되겠지만, 관리를 하려면 영어가 능통해야 하는 미국에서 절대 관리자로 지원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국은 개발자로 은퇴가 가능하고, 개발자의 경우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영어가 되면 자기 실력만 있으면 취업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이쯤되면 SI 종사자의 미국 이민, 그것도 영어가 안되어 한인 회사에, 심지어 그 중에서도 인턴쉽(J비자)으로 취업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시게 됐을 겁니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나면 미국 회사에서 연봉 7만불 이상, 많으면 8~10만불 받으며, 하루 8시간 일만 하면 칼퇴근하고, 주말엔 가족과 여가 생활을 즐기고 사실 수 있습니다. 개발자로 남고 싶으면 60살 정도가 될 때까지 개발자로 일하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전에 낙마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이 글에는 생략된 내용이나 누락된 내용도 많습니다. 틀린 내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걸 전부 믿지는 마시고, 정확한 내용은
변호사에게 상담하시는게 좋습니다. 아니면
http://workingus.com 같은 사이트에 가보시면 수 많은 SI 종사 이민자들의 냉정한 조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에게 궁금하신게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시고, 사적인 내용이라면 비밀 댓글로 달아주세요. 다만 제가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내용 중에도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고, 조언을 해드리는 것도 겉핥기밖에 안되며,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미국 이민을 하려고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게 “잘 모르는 경험자의 카더라” 입니다. 카더라만 믿고 했다가 나와 내 가족의 일생이 망가져도 그런 카더라 조언을 한 사람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씩 신중하게 따져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시행착오와 엄청난 비용 낭비를 경험하고 피눈물을 흘려봤습니다.
만약 저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떤 과정을 밟겠냐고 물으신다면, 먼저 몇개월 정도 혼자 미국에 와서 미국의 사정을 몸으로 경험해 보고, 다시 H1부터 제대로 준비해서 미국에 오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얼마 안되는 푼돈이라도 재산의 일정 부분을 한국에 묻어두었다가 나중에 모든게 잘 풀리고 미국에 자리잡았을 때 사용할 종잣돈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이민 사회에는 “미국 와서 2~3년 동안 가진 돈 다 날리고 나서야 진짜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Barr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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