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2012

직립보행이 아니라 직립주행했다



1부: 인류는 달린다 – ③ 직립보행이 아니라 직립주행했다
나무에서 내려온 원시 인류는 직립보행에 성공했다. 두 발로 서서 이동하게 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자유롭게 놀리게 된 두 손으로 원시 인류는 도구를 만들게 됐다. 도구는 인간을 강하게 했고, 도구 제작 과정은 인간의 두뇌를 발달시켰다. 인류의 진화는 직립보행에서 시작됐다.
이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인류의 진화 과정이다. 인류학자 메리 리키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영장류의 발달 과정에서 직립보행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립보행은 인간의 조상을 그밖의 원시종과 구별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이 고유한 능력은 두 손을 해방시켜 무수한 가능성- 물건을 나르고 도구를 만들고 섬세한 작업을 진행할 가능성-을 열었고, 이러한 하나의 발전으로부터 모든 현대적 테크놀로지가 발생했다.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지만 앞다리가 누리게 된 새로운 자유가 도전장을 내밀었고, 두뇌는 그 도전에 답하기 위해 확장됐다는 공식도 가능하다. 인류는 이렇게 생겨났다.”
이처럼 지금까지 인류의 진화는 직립보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졌다. 달리기를 인류의 진화와 연관 지은 연구는 거의 없었다. 달리기는 걷는 능력이 향상되면서 얻게 된 부산물로만 여겨졌다. 기존 연구는 인류가 달림으로써 성취하게 된 바가 없다고 봤다. 인류가 경주에서 이길 수 있는 네발 동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영양을 잡을 수 없고 늑대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인류는 원숭이보다 잘 달리게 됐지만 그 능력은 별 쓸모가 없었다는 게 기존 연구의 결론이었다.
최근 수년간 연구는 기존 학설에 맞선다. 인류가 직립보행(直立步行)이 아니라 직립주행(直立走行) 하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본 투 워크(born to walk)’가 아니라 ‘본 투 런(born to run)’이라는 얘기다. 신화가 된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1922~2000)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고 선언했다. 자토펙은 인체와 달리기의 뿌리가 닿아 있음을 직관으로 느낀 것일까?
네발 달린 동물과 비교할 때 사람은 훨씬 느리지만 훨씬 오래 달린다. 물만 마시면 네 시간이고 여덟 시간이고 계속 뛸 수 있다. 지구력 달리기에서 인간은 거의 모든 네발 동물을 이긴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말과 사람의 경주에서 사람이 이긴 사례가 있다. 영국 웨일즈의 한 마을에서 여인숙 주인과 여우 사냥꾼이 말과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빠른지 논쟁이 붙었다. 여인숙 주인은 매우 먼 거리를 놓고 경주를 벌이면 사람이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싸움이 경주로 이어졌다. 웨일즈 지방에서는 1980년 이후 매년 ‘사람 대 말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기수를 태운 말과 사람으로 이뤄진 참가자들은 숲을 지나 산등성이 돌길을 넘어 황무지와 여울을 가로지르는 22마일(약 35km) 레이스를 벌인다. 사람팀은 말팀에 연전연패했다. 그러나 마침내 2004년에 처음으로 사람이 말을 앞질러 결승선을 통과했다.
오래 달린 사냥꾼이 인간으로인류가 달리도록 진화했다면 달리기가 생존에 매우 유리했어야 한다. 달리기는 앞에서 말한 대로 포식동물로부터 도망치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달리기는 그러나 인류를 사냥꾼으로 변신시켰다. 사냥꾼 인간의 달리기는 단거리가 아니라, 아주 오래오래 달리기였다. 활은 물론 창조차 없어도 된다. 창은 20만년 전에, 활은 2만년 전에 발명됐다.
200만년 전 원시 인류는 돌을 깨뜨려 날을 세운 주먹도끼와 몽둥이를 든 채 무리 가운데 한 놈을 골라 추격을 시작했다. 목표물로 삼은 동물이 무리에 다시 합류하지 못하도록 격리하면서 자취를 놓치지 않았다. 추격이 몇 시간에 이르면 먹잇감은 마침내 더위와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작은 인간>에서 멕시코 타라후마라 부족의 전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멕시코 북부 타라후마라 인디언들은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이틀 동안 쫓아간다. 아무리 짧아도 하루 이상은 걸린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사슴이 쉬지 않고 뛰도록 한다. 아주 가끔 그 추적물을 희미하게 볼 수 있지만, 발자국을 식별하는 그들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동원해 매우 정확하게 쫓아간다. 사슴은 마침내 지치고 많은 경우 발굽이 완전히 닳아서 쓰러진다. 바로 그때 사람이 들려들어 목을 조르거나 개가 나서서 죽인다.”
타라후마라족은 멕시코 북부 험준한 산악지대인 코퍼 캐니언에서 거주한다. 현재 인구는 약 6만명으로 추산된다. 타라후마라족은 실제로 잘 달린다. 스스로를 ‘라라무리’ 즉, ‘달리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한번 달리면 48시간, 240km를 주파한다고 알려졌다. 타라후마라족은 42.195km를 뛰는 마라톤 대회도 출전한 적이 있는데, 결승점을 지난 그들의 반응은 ‘애걔, 오래 달린다더니, 고작 이걸로 끝난 거야?’라는 식이었다.
타라후마라족의 오래 달리기 실력은 1990년대 중반에 실증됐다. 대회는 미국의 리드빌 울트라마라톤이었다. 공식 이름이 ‘리드빌 트레일(Leadville Trail) 100’인 이 대회는 록키산맥을 오르내리며 100마일(160km)을 달리는 시합이다. 콜로라도주 리드빌 인근에서 개최된다. 출발 후 30시간 내에 결승점에 들어와야 완주로 인정된다. 대개 참가자 중 절반 미만만 완주에 성공한다.
1992년 리드빌 트레일 100에는 290명이 출전했다. 타라후마라족 다섯 명이 처음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전원 탈락했다. 그러나 이듬해엔 상위 5위 가운데 1위와 2위, 5위를 휩쓸었다. 1994년에는 후안이라는 이름의 타라후마라 남자가 17시간 30분에 완주하며 우승했다. 이전 기록을 25분 단축한 신기록이었다. 타라후마라족은 이 대회에서 우승 외에도 4,5,7,10,11위를 차지했다. (달리기의 달인 타라후마라족도 이후엔 점차 전문적으로 훈련한 선수에게 밀린다. 현재 리드빌 트레일 100의 최고 기록은 매트 카펜터가 2005년에 세운 15시간 42분이다.)
그러나 타라후마라족의 전설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거 그들이 평원에서 살 때의 얘기였다. 산악지대에 살게 된 타라후마라족은 이제 오래달리기로 사슴을 사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도 어딘가에서 원시 부족은 끈기있게 달려서 사냥하지 않을까?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어느 오지에서는 200만년 전의 사냥 기술을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추격 사냥은 하마터면 전설로만 남을 뻔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루이스 리벤버그가 칼라하리 사막 부시맨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 본 경험을 들려주지 않았다면. 리벤버그는 2001년에 책 <트래킹의 예술: 과학의 기원(The Art of Tracking: The Origin of Science)>을 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칼라하리 부시맨이 얼룩영양(kudu)을 8시간 쫓은 끝에 사냥에 성공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일부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우리 뇌는 단백질이 키웠다직립주행을 통해 원시 인류는 사냥꾼으로 거듭났다. 사냥을 통해 원시 인류는 이전에 비해 동물성 단백질을 듬뿍 섭취할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바로 이 변화가 원시 인류의 두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류 뇌의 성장은 육류 섭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기를 먹지 못했다면 우리는 결코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직립보행에 머물렀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도약이었다. 달려서 사냥해 얻은 고기에서 단백질을 흡수하면서 원시 인류의 뇌는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팽창했다. 원시 인류의 뇌는 비슷한 포유류의 뇌와 비교해 7배가 될 때까지 자랐다. 성능도 좋아졌다. 몸무게에서 뇌가 차지하는 비중은 침팬지나 사람이나 2%로 비슷하다. 하지만 침팬지 뇌에는 몸이 쓰는 에너지의 9%가 들어가는 반면 사람 뇌에는 20%가 투입된다.
원시 인류는 아마 각자 주먹도끼를 들고 무리지어 먹을 거리를 찾아다녔으리라. 그러다 사냥과 포식이 끝나고 남은 동물의 유골에서 뭔가 섭취할 게 있지 않을까 궁리했으리라. 이들은 요즘 침팬지가 돌멩이로 딱딱한 열매 껍데기를 부수는 것처럼, 유골의 두개골과 다리뼈를 주먹도끼로 깨뜨려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 속의 뇌와 골수를 섭취하지 않았을까?
청소동물로 단백질을 섭취하던 원시 인류 가운데 달리는 능력을 갖게 된 변이가 일어난다. 새로운 무리는 기존 무리보다 빨리 ‘사냥의 현장’에 도달하고, 기존 무리보다 더 많이 영양을 섭취한다. 새로운 무리는 개체 수를 늘린다. 유전자 변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복리이자처럼 작용한다. 조금 유리하더라도 세대가 누적되면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후 원시 인류에서 달리는 능력을 주는 신체적 특질은 지배적인 형질로 자리잡는다.
최근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인류가 구석기를 활용한 시기가 176만년 전으로 앞당겨졌다. 이전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석기는 160만년 전에 제작된 것이었다. 구석기를 활용한 시기가 원시 인류가 등장한 시기인 200만년 전과 비교해 수십만 년의 공백이 생긴다. 그렇다면 원시 인류는 구석기가 아닌 돌멩이를 들고 먹잇감을 찾아 나섰으리라고 추정된다.
추격 사냥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초식동물인 사냥감은 대개 무리를 이룬다. 추격당하는 사냥감은 어떻게든 다시 무리 속에 들어가려고 한다. 무리 속으로 도망가 그 속에 묻히면 사냥꾼의 눈을 따돌릴 수 있다. 초식동물 가운데 무리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얼룩말이다. 얼룩말의 세로 줄무늬는 포식자가 그 중 하나를 가려내 특정한 표적으로 삼기 어렵게 만든다.
도망치던 사냥감이 무리에 합류했고, 포식자는 쫓던 사냥감을 골라내지 못한다고하자. 포식자는 새로 한 놈을 정해 새로운 추격전을 시작해야 할까?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가는 포식자가 사냥감보다 먼저 지쳐 쓰러진다. 추격 사냥에서 중요한 일은 사냥감이 무리에 다시 섞이지 못하게 길목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럿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또 서로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추격하던 개체가 수풀에 들어갔을 때엔 발자취를 보고 흔적을 찾아 사냥감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숨었는지 추론해야 한다.
사냥에 성공한 다음에는 돌도끼로 고기를 잘라 나눠 들고 거주지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던 부족과 함께 둘러 앉아 고기를 나눠먹었을 것이다. 고기를 한껏 먹으면서, 그날 사냥감을 어떻게 추격했는지,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웠는지, 다음 사냥에서는 어떤 작전을 쓸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사냥을 하고 나눠먹으면서 원시 인류는 지능과 의사소통 능력을 더욱 키웠으리라 짐작된다.
일부 학자들은 원시 인류 중 16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에렉투스가 불(火)과 언어를 사용했으리라고 추정한다. 인류는 불을 지피면서 포식자를 물리치면서 난방을 해결했고, 요리를 통해 음식으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었다. 언어로 무장한 인류는 시간의 제약을 넘어 지식을 공유하고 축적함으로써 슬기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로 변신했다.
참고 책
- 크리스토퍼 맥두걸, 본투런, 페이퍼로드, 2010
- 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 민음사, 2003
- 리처드 랭엄, 요리본능, 사이언스북스, 2011
- 데트레프 간텐, 우리 몸은 석기시대, 중앙북스, 2011
- 과학동아, 북극곰이 흰색인 이유, 성우, 2003
관련 자료
- 한국마사회 다음 블로그: 말과 사람의 마라톤 대결- 동영상: Human Mammal, Human Hunter – Attenborough – Life of Mammals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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