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2012
라임(Rhyme): 한국 힙합의 라임 변천사
한국힙합의 발전 기간은 길게 보아도 15 년 정도로 상당히 짧은 축에 속한다. 그런만큼 단계별, 세대별로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명확하게 단계별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라임(Rhyme)'이다. 사전적인 의미의 라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라임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힙합에서 말하는 라임은 사전적인 의미와는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 글로 그 미묘한 차이를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전체적인 라임의 역사를 죽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을 읽게 되면 '라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하의 글에서 나눈 시기와 세대는 본인이 편의대로 나눈 것임을 미리 알려드리는 바이다.
1세대 힙합의 라임 : 무운(無韻) -> 동어 반복
1세대 힙합이라면 오버에서는 현진영('89 데뷔)에서 듀스, 그 이후로 대략 김진표('98 1집 솔로 발표) 정도까지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한국의 대중들에게 힙합음악이라는 장르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한 가수들이지만 사실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평가를 아주 높게 할 수는 없다. 힙합이라는 장르음악 자체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라임을 논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김진표 이전까지 오버그라운드 힙합에서는 라임이라는 것 자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아예 라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김진표 1집에서 비로소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라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은 '~다'와 같이 맨 매지막의 한글자를 맞추거나 동일한 단어를 여러번 배치하는 형태였다.
이런 현상은 언더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때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힙합이라면 나우누리의 'S.N.P'와 하이텔의 'B.L.E.X'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블렉스에서 발매한 검은소리 1집(소위 가내수공업 앨범;;;)의 참여진을 살펴보면 메타라던가 주석과 같은 '라임'마스터 급의 MC들이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라임의 수준은 오버그라운드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곳을 클릭 해서 당시 검은 소리 1집에 수록되었던 단체곡 B.L.E.X와 그 가사를 접해본다면 초기 한국힙합 라임의 수준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참여진 중 박주석이 지금의 주석Joosuc, 이재현이 지금의 MC 매타Meta이다.)
물론 S.N.P쪽의 경우에는 이미 이때 당시에 '방법론'적으로 힙합에 접근하려 시도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시도에 그쳤을 뿐, SNP소속의 뮤지션들이 본격적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시기는 99년 이후부터 이므로 1세대 힙합의 라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세대 힙합의 라임 : 2음절, 3음절 단어의 반복
이후 나오는 노래들에서는 2음절,3음절 라임의 반복이 주를 이루게 된다. 언더, 오버를 통틀어서 상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수의 힙합음반이 쏟아져 나온시기로, 98년부터 SNP소속 뮤지션들이 음반을 막 발표하기 시작한 2000년 정도까지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후에도 단어반복 형식의 2세대 라임은 많이 등장하지만 주로 3세대 라임이라 불리는 '다음절 라임'과 혼용 된다.
1세대 라임의 대표주자가 김진표였다고 한다면 2세대 라임의 대표주자는 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발표한 마스터플랜의 MP HIPHOP PROJECT 2000앨범에 실린 '정상을 향한 독주'의 가사를 살펴보면,
늦게나마 찾아낸 소중한 내 삶의 의미
뒤늦은 기미가 약간 없지는 않지
하지만 내 시작은 이미 반 이상의 진행을 의미
노란색으로 하이라이트 처리된 부분이 2세대 형식의 라임이다. 이후 2003년에 발표된 주석 3집에 실린 '정상을 향한 독주2'를 보면 그의 라임이 더욱 향상되어서, 동시대에 함께 등장한 3세대 다음절 라임에 가까운 수준의 라임을 구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도시여 20년 지기 벗이여
기쁨과 슬픔을 모두 네게 덧씌워
고뇌는 있지만 후회는 없어
아무런 보장은 없지만 희망은 있어
비가 온 후엔 구름은 걷히잖아
마지막 순간에도 무릎을 끓지 않아
내 자신이 내게 바라는 끊임없는 재개발화
철 같은 의지는 마치 체게바라
투지를 불태워 더욱 세게 발화(發火)
안되면 될 때까지 끝까지 되게 하라
3년 전에 이미 내가 뱉은 말
그 말이 씨가 되어 comin soon 해뜰 날
3point shot 길이 보인다 기뻐해라
(I told ya)내 자신감이 키 포인트다
이쯤되면 스스로를 '수퍼라임메이커'라고 칭했던 것이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다. 2세대 라임메이커중에 주석은 거의 최고 수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3세대 힙합의 라임 : '다음절 라임'의 시작
2001년 이후 VJ, P-type, 4WD, Defconn등 나우누리 흑인음악 동호회 S.N.P에서 활동하던 힙합 뮤지션들이 대거 언더씬에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라임'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한글로 만들수 있는 라임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이들은 마치 그런 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각자가 독특하면서도 그동안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독창적인 라임을 들고나와 힙합씬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특히 자신의 독특한 라임철학을 가지고 현재는 논객으로도 가끔 이름을 비추는 P-type(강진필)과 현재까지도 라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인 Verbal Jint(VJ), 그리고 SNP소속이 아닌 뮤지션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다음절 라임의 대표주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MASTA WU(현재 YG에 속해 있는 마스터 우 AKA 우진원)의 라임은 귀로 듣는것과 동시에 눈으로 가사를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어떻게 라임이 형성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놀라움을 선사했다.
지금도 역대 최고의 라임으로 리스너들이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4WD의 '노자'중에서 VJ의 verse를 살펴보자.
그래 좆도 몰라
유치한 rhyme을 조물락
길지 않은 verse 에도 flow 는 호흡 곤란
조PD he's a wack 초보자
he ain't spittin' rhymes He just suck on the microphone a lot
콧물 가득한 안타까운 목소리가 밤새워 고민한
망가진 flow 에다 애송이 rhyme 을 들려줄 때 조용히 난 웃곤 하지
Oh my God, 버르장머리없는 꼬마가 고만고만한 rap을 지껄이다 우릴 보고 도망가.
쪼다 hip-hopper 들을 따먹고 느끼는 포만감
4WD & Verbal Jint 의 치밀한 2인조 강간
좋아라 좋아라? 당하며 느낄 줄도 알아?
니들의 rhyme 연습장 그건 가벼운 수작
우린 반면에 문자 그대로 새로운 rhyme 의 선구자
Suckers turn loser! 4WD & Verbal Jint, 우리는 가장 높은 곳을 원해 겁없이
이쯤되면 라임 도배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색으로 하이라이트 처리된 모든 부분이 라임인데 글자만 보아서는 같은 느낌을 받도록 발음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부분도 적지 않다. 다음절 라임부터는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음악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가사를 따라가며 라임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2세대 라임과의 차이점이라면 2세대 라임은 글자만 읽어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3세대 라임은 MC가 신경써서 끊어 읽는 다거나 혹은 발음의 강세를 변화시킨다거나 하는 '기술'적인 요소가 더해지지 않으면 라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4세대 힙합의 라임 : 모음조화를 통한 라임
2세대와 3세대를 거치면서 힙합에 있어서 라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반대로 지나친 라임때문에 가사의 진정성이 사라지고, 의미전달이 어려워 진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게 생겨났다. 지나친 라임사용을 비꼬았던 UMC같은 MC도 등장하는 등 '라임'과 '의미전달' 둘중에 어느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이 심해지던 시기가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나타난것이 4세대 라임인 '모음조화 라임'이다. 4세대 라임은 현재 진행형인, 발전중인 라임으로 그 선두주자로는 2000년대의 Hottest 레이블인 '소울컴퍼니', 그 중에서도 화나와 칼날로 이루어진 팀 '최적화'를 들 수 있겠다.
모음조화 라임은 자음보다는 모음에 신경을 써서, 듣기에 지나치게 거북스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냥 생각없이 들으면 라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게 이어져 가는 형식으로, 모음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단어 운용의 폭도 넓어져서 무리한 단어의 사용이 줄어들게 되었다.
화나의 '최적화' 라는 곡과 소울컴퍼니의 단체곡 '아에이오우 어?'에서 모음조화 라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라임이 너무 많아서 라임표기는 생략하고 두 곡을 들을 수 있는 링크만 걸어놓겠다.
나는 라임이라는 것이 힙합에 있어서 무척 중요하며, 지켜야 하는 형식이라는 뮤지션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지나친 라임이 가사의 의사전달력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는 UMC의 의견에도 동의한다.
결국 라임이라는 것은 힙합음악이 존재하는 한, 한국어로 랩을 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논쟁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러한 논쟁들이 점점더 발전된 형태의 라임을 만들고 있는 것일 테니 어찌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을 해 보며 글을 마친다.
출처: http://tiglord.tistory.com/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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